한국 드라마에서 복수극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아 온 장르입니다. 악인에게 정의를 구현하고, 피해자가 고통을 딛고 일어나는 이야기에는 강한 감정적 몰입과 카타르시스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복수극은 더 이상 단순한 권선징악의 틀을 벗어나, 인물의 내면과 사회적 메시지까지 아우르는 복합 서사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넷플릭스의 화제작 ‘더 글로리’와 tvN의 인기작 ‘빈센조’입니다. 두 작품 모두 복수를 주제로 하지만, 전개 방식과 정서, 메시지는 극명히 다릅니다. 이 글에서는 ‘더 글로리’와 ‘빈센조’가 어떤 방식으로 복수극을 풀어냈는지, 세 가지 핵심 축을 중심으로 비교 분석합니다.
1. 복수의 동기와 정서 – 피해자 중심 vs 정의 실현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문동은(송혜교)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가해자들에게 오랜 시간에 걸쳐 복수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은 시작부터 끝까지 문동은의 고통과 내면에 집중하며, 시청자에게 "복수란 무엇인가", "복수는 치유가 될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묻습니다. 문동은은 단순히 복수를 감행하는 주체가 아니라, 그 고통의 시간 자체를 살아온 인물입니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 말투, 무표정한 얼굴에는 감정을 억누른 세월의 무게가 담겨 있죠. ‘더 글로리’가 특별한 이유는 복수 자체보다 그 감정의 뿌리를 집요하게 따라간다는 점입니다. 시청자는 문동은을 보며 단순히 통쾌함보다는 애잔함, 동정심, 분노 등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녀가 복수하는 대상은 단순한 ‘악당’이 아닌, 자신에게 지옥 같은 시간을 안겨준 현실의 얼굴이기에,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옵니다. 반면 ‘빈센조’의 주인공은 마피아 출신 변호사 빈센조 까사노(송중기)입니다. 그는 한국의 대기업 바벨그룹의 악행에 맞서 싸우면서 복수를 전개합니다. 여기서 복수는 개인적 복수라기보다는 정의 실현의 성격이 강합니다. 빈센조는 처음엔 자신의 금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지만, 점차 바벨과 부패한 권력의 민낯을 보며 스스로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자경단적 사명을 갖게 되죠. 이처럼 ‘빈센조’는 전형적인 히어로물의 구조를 따르며, 시청자에게 복수의 당위성을 강조합니다. 주인공은 고통보다는 냉철한 전략과 카리스마로 악을 처단하고, 그 결과 시청자는 깊은 몰입과 함께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합니다. 즉, ‘더 글로리’가 감정 중심의 복수라면, ‘빈센조’는 논리적 정당성을 갖춘 정의 중심의 복수입니다.
2. 복수의 방식 – 은밀한 설계 vs 전략적 전면전
복수의 스타일 또한 두 작품은 큰 차이를 보입니다. ‘더 글로리’는 시간의 예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문동은은 수년간 가해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하고, 하나하나 약점을 찾아냅니다. 그녀는 물리적 폭력 대신, 심리적 파괴, 관계 균열, 사회적 낙인을 이용한 복수 전략을 구사합니다. 예를 들어, 가해자들 사이에 불신을 심고,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방식은 복수극에서는 보기 드문 정서적 접근입니다. 특히 문동은의 복수는 주인공이 직접 나서지 않고, 다른 인물을 조력자로 활용하는 ‘비직접적 방식’이 많습니다. 이는 마치 체스 게임처럼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으며, 그 과정에서 시청자는 긴장감과 불안감을 경험합니다. 또한, 복수의 성공보다 과정에 담긴 감정선에 더 큰 무게를 둠으로써, 단순한 복수극의 문법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반면, ‘빈센조’는 다이내믹한 직접적 전면전의 방식을 취합니다. 폭파, 해킹, 언론 조작, 조직 결집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적을 공격하고, 그 수법은 때로는 불법적이거나 마피아적인 방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스타일리시하고 오락성 강한 연출로 포장되어 있어, 시청자는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빈센조는 복수에 있어서 감정보다 효율과 전략을 앞세우며, 적의 약점을 단번에 파악하고 압박해 나가는 ‘프로의 복수’를 보여줍니다. 그가 펼치는 복수극은 매회 반전과 액션이 가득하고, 감정보다는 계획과 통제가 중심이 됩니다.
3. 감정선과 메시지 – 치유의 여정 vs 통쾌한 풍자극
‘더 글로리’는 복수극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피해자의 치유 여정에 방점을 둡니다. 복수가 성공한 후에도 문동은은 완전히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싸워온 대상은 가해자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무너진 자신의 삶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문동은은 복수를 마친 뒤에도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러한 서사는 시청자에게 단순한 복수 이상의 감정적 울림을 줍니다. 현실의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 복수가 주는 순간적 위안, 그리고 궁극적인 공허함까지 드라마 속에 담겨 있어, 작품은 사회적 메시지와 정서적 공감을 동시에 전달합니다. 특히 학교폭력이라는 민감한 사회 문제를 진지하게 조명하며, 공론화와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반대로 ‘빈센조’는 복수를 통한 사회 풍자극에 가깝습니다. 악당은 단지 악인이 아니라, 현실 속 부패한 권력의 상징이며, 주인공은 그들의 위선을 무너뜨리는 풍자의 화신입니다. 드라마는 법, 언론, 재벌, 정치의 결탁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빈센조의 복수를 통해 현실 사회의 부조리를 유쾌하게 조롱합니다. 그렇다고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빈센조 역시 사랑, 상실, 우정 등 다양한 인간관계를 통해 변화하며, 복수가 단순한 목적이 아닌 자기 정의 확립의 과정이 됩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오락성과 쾌감 중심의 서사 구조 속에서 현실 비판과 유머를 균형 있게 버무린 작품이라 볼 수 있습니다.
‘더 글로리’와 ‘빈센조’는 복수극이라는 큰 틀 안에서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한 작품입니다. 전자는 피해자의 감정과 치유의 여정을 서늘하게 보여주는 정적인 복수극, 후자는 전략적이고 유쾌한 풍자적 복수극으로서 동적인 전개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복수에 더 끌리시나요? 가슴을 저미는 고요한 복수인가요, 아니면 속이 시원한 전면 공격의 복수인가요? 두 작품 모두, 복수라는 주제가 얼마나 다양한 감정과 메시지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증명해 준 뛰어난 예입니다. 복수극의 새로운 진화를 경험하고 싶다면, 이 두 작품을 다시 한번 깊이 들여다보는 것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