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에서 ‘이탈리아’라는 소재는 종종 낭만과 이국적인 정서, 때로는 강렬한 감성적 대비로 등장해 극의 분위기를 이끌어갑니다. 대표적으로 ‘미스터 션샤인’과 ‘빈센조’는 서로 전혀 다른 시대와 배경, 장르를 가졌지만 공통적으로 이탈리아라는 배경 또는 감성을 주요 장치로 활용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두 작품이 어떻게 이탈리아적 요소를 녹여내어 각각의 캐릭터와 서사, 시청자 감정에 영향을 주었는지 비교 분석해 봅니다.
1. 이탈리아 감성, 캐릭터의 정체성을 구축하다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유진 초이(이병헌 분)는 미국으로 이민한 후 미 해병대 장교가 되어 조선에 돌아오는 인물입니다. 겉으로는 미국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극 초반 그가 머물던 곳 중 하나로 이탈리아 피렌체가 언급되며 유럽적 세련미와 고독한 낭만이 그의 이미지에 덧씌워집니다. 이는 캐릭터가 가진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고독을 상징하며, 그의 내면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듭니다. 반면 ‘빈센조’는 그 자체로 이탈리아에서 성장한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 까사노(송중기 분)가 주인공입니다. 그는 이탈리아적 매너와 냉철함, 복수심과 품위를 동시에 지닌 인물로 묘사됩니다. 초반부터 이탈리아어와 클래식 음악, 유럽풍 슈트와 와인 문화 등은 그가 이탈리아에서 물들인 삶의 방식을 대변하며, 한국 사회의 혼돈 속에서 차별화된 존재감을 부여합니다. 두 작품 모두 이탈리아라는 설정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의 세계관과 태도, 정체성을 설계하는 핵심 도구로 활용됩니다. 즉, 이국적인 정서가 단지 ‘멋’이 아닌, 인물의 내적 갈등과 가치관을 부각하는 데 기여한 셈입니다.
2. 시각적 연출과 음악으로 구현된 낭만과 냉혹함
두 드라마는 이탈리아 감성을 단지 대사나 설정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시청각적 연출을 통해 적극적으로 구현합니다. ‘미스터 션샤인’은 장대한 화면 구성과 절제된 색채, 배경으로 19세기 말 유럽의 미장센을 조선에 이식한 듯한 비주얼을 선보입니다. 특히 주인공의 시선에서 그려지는 경복궁, 한성 거리, 미국 공사관은 어디선가 본 듯한 고전 유럽 영화의 구도와 감성을 담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빈센조’는 이탈리아 영화의 느낌을 의도적으로 과장하며 블랙 코미디와 누아르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화려한 슬로우모션, 클래식 오페라 음악, 박력 넘치는 액션과 대비되는 정적인 장면 전환 등은 빈센조라는 인물의 냉정한 복수자 면모와 그 안에 숨어있는 낭만주의적 감성을 동시에 전달합니다. 두 작품 모두 이탈리아를 모티브로 한 음악적 구성도 탁월합니다.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중심의 서정적 OST가 주를 이루고, ‘빈센조’에서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라 캄파넬라’ 등 이탈리아 클래식이 핵심 장면에 사용되어 분위기를 압도합니다. 이처럼 음악은 단지 배경이 아닌, 등장인물의 감정과 극 전개에 리듬을 부여하는 핵심 연출 장치로 작용합니다.
3. 한국 현실과 이탈리아적 이상주의의 충돌
이 두 드라마의 공통적인 핵심 메시지는 한국 사회의 현실적 문제와의 충돌에 있습니다. ‘미스터 션샤인’은 조선 말기 외세와 내부의 모순이 교차하는 시기를 배경으로, 계급과 민족, 존재의 의미를 탐색합니다. 유진 초이는 미국인이지만 조선인의 피를 가졌고, 서양식 교육을 받았지만 조선의 고통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그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은 서구적 가치관과 조선 현실 간의 괴리를 상징합니다. ‘빈센조’는 훨씬 더 직접적으로 한국의 부패한 권력, 대기업, 사법 시스템을 풍자합니다. 빈센조는 이탈리아 마피아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며, 그 속에서 한국 사회의 비합리성과 기형적인 구조를 들춰냅니다. 법보다 정의를, 정의보다 복수를 선택하는 그의 방식은 시청자들에게 통쾌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안깁니다. 이처럼 두 작품은 모두 이탈리아라는 이상적 공간 또는 정서를 통해 한국 사회의 현실을 되비추는 거울 역할을 합니다. 이는 단순한 국적이나 배경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이 처한 사회적 구조와 내면의 갈등을 더 깊이 있게 탐색하게 만드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미스터 션샤인’과 ‘빈센조’는 장르도 시대도 다르지만, 이탈리아 감성이라는 공통 코드를 통해 주인공과 서사에 특별한 깊이를 더한 작품입니다. 유진 초이의 고독한 이상주의와 빈센조 까사노의 냉철한 복수주의는 모두 한국 현실과의 충돌 속에서 더욱 빛납니다. 두 작품 모두 단순한 외국 배경을 넘어, 정체성과 가치관,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로 기억될 만합니다. 다시 한번 이 두 드라마를 감상하며, 그 속에 담긴 이국적이지만 낯설지 않은 감정들을 되새겨보시길 추천드립니다.